선물을 값으로 따질 수는 없습니다. 누가 내게 선물을 줄 때 “이것 얼마짜리입니까?” 하고 값을 따지면 예의에 어긋납니다. 선물을 준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돈으로 따지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을 무엇으로 값을 매길 수 있겠습니까? 그 큰 선물,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영원히 용서해 놓으셨다는 선물입니다. 언젠가 누가 다른 사람에게 선물을 하면서 “예수님이 해 주신 것에 비하면 이것은 천분의 일, 만분의 일도 안 됩니다.”라고 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베푸신 그 선물, 구약 시대에 염소나 송아지의 피를 흘려서 드리는 제사가 아니라 예수님이 피 흘리신 언약, 우리를 영원히 용서하신 그 피가 있는 것입니다.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의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출애굽기 12:13)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라고 했습니다. 그 사람의 성격이나, 마음씨, 인상, 지식, 고매한 인품 등을 보고 넘어간다는 말은 성경 그 어디에도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선물을 값으로 따질 수는 없습니다. 누가 내게 선물을 줄 때 “이것 얼마짜리입니까?” 하고 값을 따지면 예의에 어긋납니다. 선물을 준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돈으로 따지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을 무엇으로 값을 매길 수 있겠습니까? 그 큰 선물,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영원히 용서해 놓으셨다는 선물입니다. 언젠가 누가 다른 사람에게 선물을 하면서 “예수님이 해 주신 것에 비하면 이것은 천분의 일, 만분의 일도 안 됩니다.”라고 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베푸신 그 선물, 구약 시대에 염소나 송아지의 피를 흘려서 드리는 제사가 아니라 예수님이 피 흘리신 언약, 우리를 영원히 용서하신 그 피가 있는 것입니다.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라고 했습니다. 그 사람의 성격이나, 마음씨, 인상, 지식, 고매한 인품 등을 보고 넘어간다는 말은 성경 그 어디에도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