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어떤 분이셨습니까? 그는 아담의 피를 이어받은 죄인이 아니었습니다. 죄가 전혀 없는 하나님의 아들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한복음 3:16)
만약 그분이 온 세상의 죄를 다 짊어지지 않고 “다 이루었다”라고 하셨다면 그는 이 인류 역사상 최대의 사기꾼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마침내 그는 온 세상의 죄를 다 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 사랑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 할 필요도 없습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에베소서 2:8-9)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값없이 용서를 받았으므로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수십 년을 믿었다고 자부하며 “값도 없이 받아” (찬송가 235장) 하고 찬송가를 부르고 있는 사람에게 “당신, 정말 값없이 천당에 갑니까?” 하고 질문해 보십시오. “아이고, 아직 덜 됐습니다. 열심히 노력해야지요.” 하는 대답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 이루어 놓으셨습니다. 다 이루어 놓은 그 사실에 우리의 마음을 맡기면 되는 것입니다. “날래게 뛰어나가 믿음으로 나의 마음 지금 깨끗하였네” (합동찬송가 343장) 라는 찬송가는 있지만 “날래게 뛰어나가 지금부터 마음 고쳐 먹기로 작정합니다” 하는 찬송가는 없습니다.
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케 되신 아들을 세우셨느니라 (히브리서 7:28)
맹세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땅으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마태복음 5:34-35)
하나님만이 맹세할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영원히 맹세해 놓았는데 우리가 잘 믿기로 맹세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굳건한 반석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찬송가 539장) 라는 찬송가 가사대로 반석이신 예수님 위에 서서 예수님께서 해 놓으신 일만 믿으면 됩니다. 예수께서 영원한 구속 사업을 완성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우리’라든지 ‘세상’보다는 ‘나’를 먼저 생각해야 됩니다. 먼 곳을 여행하던 나그네가 목이 타서 기진맥진해 있다고 합시다. 그럴 경우 “우리에게 물 좀 주십시오.”라고 하겠습니까, “내게 물 좀 주십시오.”라고 하겠습니까? 목 마른 것은 ‘내’ 사정이지 ‘우리’ 사정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해 놓으신 영원한 사실을 ‘우리’가 아닌 ‘내’가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분이셨습니까? 그는 아담의 피를 이어받은 죄인이 아니었습니다. 죄가 전혀 없는 하나님의 아들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만약 그분이 온 세상의 죄를 다 짊어지지 않고 “다 이루었다”라고 하셨다면 그는 이 인류 역사상 최대의 사기꾼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마침내 그는 온 세상의 죄를 다 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 사랑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 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값없이 용서를 받았으므로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수십 년을 믿었다고 자부하며 “값도 없이 받아” (찬송가 235장) 하고 찬송가를 부르고 있는 사람에게 “당신, 정말 값없이 천당에 갑니까?” 하고 질문해 보십시오. “아이고, 아직 덜 됐습니다. 열심히 노력해야지요.” 하는 대답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 이루어 놓으셨습니다. 다 이루어 놓은 그 사실에 우리의 마음을 맡기면 되는 것입니다. “날래게 뛰어나가 믿음으로 나의 마음 지금 깨끗하였네” (합동찬송가 343장) 라는 찬송가는 있지만 “날래게 뛰어나가 지금부터 마음 고쳐 먹기로 작정합니다” 하는 찬송가는 없습니다.
맹세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맹세할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영원히 맹세해 놓았는데 우리가 잘 믿기로 맹세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굳건한 반석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찬송가 539장) 라는 찬송가 가사대로 반석이신 예수님 위에 서서 예수님께서 해 놓으신 일만 믿으면 됩니다. 예수께서 영원한 구속 사업을 완성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우리’라든지 ‘세상’보다는 ‘나’를 먼저 생각해야 됩니다. 먼 곳을 여행하던 나그네가 목이 타서 기진맥진해 있다고 합시다. 그럴 경우 “우리에게 물 좀 주십시오.”라고 하겠습니까, “내게 물 좀 주십시오.”라고 하겠습니까? 목 마른 것은 ‘내’ 사정이지 ‘우리’ 사정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해 놓으신 영원한 사실을 ‘우리’가 아닌 ‘내’가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